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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자유게시판

    공부에 恨이 맺힌 美 이민자의 삶(2회)

    2026-04-16 by Mason할배

     

    (2회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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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== 초등학교 시절 ==
    7살에 경남 울주군 중남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
    12살 6학년 겨울에 단신 서울로 올라가 졸업식도 못 하고 졸업을 했다.

    9살부터 12살 까지 한문을 배웠다.
    고향 땅 옆에 사시던 유교 학자(난쟁이 아저씨)가 가르쳐 주셨다.
    그는 동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.

    어느 해(당시 9살) 겨울 양지바른 곳 처마 밑에
    동네 애들이 너덧이 서 있었는데

    이를 본 아저씨가
    “지금 겨울이라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나면
    내년엔 더 배가 고프고 더 추워진다.
    내가 한문을 가르쳐 줄 터이니 배워라.
    글을 배우면 춥고 배고프지 않는 길을 찾을 수 있다.”고 했다.
    .
    이 와중에 잊지 못할 부분이 있다.
    그 당시는 모두가 살기 어려웠지만 이 집은 더 그랬다.
    당시는 난방과 취사가 산에서 나무를 해 와서 하는데
    이 집은 나무가 부족해 제대로 불을 못 지펴
    밥은 겨우 해먹고 나니 늘 방이 차가웠다.
    .
    아이들은 공부 할 때 방이 차서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꿇어앉아서 했다.
    그런데 그 아저씨는 다리가 짧아 우리같이 무릎으로 앉질 못하셨다.
    참으로 보기 안타까웠다.

    이 집에 아들이 둘이 있었지만 키가 작아 지게를 질 수가 없어
    산에 오르지 못해 나무를 돈을 주고 사다 썼어야 했다.

    더욱이나 먹는 것이 말이 아니었다.
    이 집엔 소나무 속껍질을 물에 며칠간 불려두었다가
    불어나면 여기에 쌀 몇 알을 넣고 죽을 끓여 먹곤 했다.
    이러고는 얼굴들이 붓는데 이걸 부황 걸렸다고 했다.
    겨울 내내 이렇게 지내다가 봄이 되어 쑥이 나면
    이 걸 캐서 끓여먹고는 낳았다.

    그런데도 그는 우리에게 돈을 받지 않으셨다.
    돈을 받으면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파는 것이라고 했다.

   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나무라도 좀 해다 드릴 걸 당시는 그 생각을 못했다.
    난 아버지가 부산에 새 집을 지으려고 헌 집을 사서 뜯다가
    지붕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졌다.
    해서 내가 우리 집의 나무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.
    난 9살이라 키가 작아 어른 지게를 질 수가 없어
    지게의 발목을 잘라 나의 키에 맞추어 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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